60년만의 재회
제 이름은 리차드 캐드월러더입니다.
저는 6.25전쟁 당시 미공군에서 복무했습니다.

1953년 어느 추운 겨울밤.
한 여성이 화상을 크게 입은
12살 난 딸을 치료해달라며
5마일이나 떨어진 막사까지 찾아왔습니다.

소녀는 턱부터 허리까지 신체 전면에
심각한 3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군의관은 2시간 동안 소녀를 치료했고
저는 그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견뎌내는 소녀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모녀는 6주 동안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
기지로 찾아와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MASH(육군이동외과병원) 소속
헬리콥터가 부대에 착륙했습니다.
저는 화상 입은 소녀를 도울 방법을 물어보았고
2시간 내로 데리고 오면
부산 군병원 화상병동에서 치료를
받게 해주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소녀의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지 못했지만
마을 쪽으로 무작정 지프차를 몰았습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다행히도 모녀를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부대로 데려와 헬리콥터에 태울 수 있었습니다.

이륙하는 헬리콥터를 보며
저는 소녀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딸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는
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졌습니다.

약 3개월 뒤 1954년 봄,
저는 기적처럼 소녀와
잠깐 동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환한 미소를 띤 소녀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되어 있었고
치료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소중한 몇 분간의 마주침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81세의 노병이 되었고..
평생을 그 어린 한국인 소녀가 보여준
놀라운 용기를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녀를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네요.

- 출처 : 2013년 1월 29일 국가보훈처 보도자료 -



2013년 4월 1일, 캐드월러더는
60년 동안 그리워 하던
'화상 소녀 김연순' 씨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추억의 장소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도
방문하였습니다

이날 김씨는 캐드월러더에게 한복을 선물하며
"치료를 받으며 리처드를 미국 아버지라 불렀다.
한동안 꿈에서도 봤지만 찾을 생각은 못했다" 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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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감동을 만드는 새벽편지가
되고 싶습니다.

- 감동을 만드는 세상! 아름답기만 하다. -